비행기

월촌중학교 1학년 성우진

늦은 저녁, 나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자 집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평소와 다른 집 분위기에 얼어 있던 나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네 언니, 내일 모레에 미국으로 유학 가.”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몇 초 후 내가 다시 되물었다. “뭐?”

엄마는 많은 말들을 나에게 쏟아냈다. 언니가 국제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 그래서 상금으로 언니가 늘 가고 싶어 했지만 돈 문제로 가지 못했던 미국 유학을 가기로 한 것, 갑작스럽게 결정되어 내일 모레에 바로 떠나는 것까지 엄마는 나에게 속사포로 말했다.

머리가 징징 울렸다. 언니와 나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우리 자매가 대화하는 시간은 아침에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시간뿐이다.

따라서 나의 지금 감정은 슬픔이나 걱정보다는 순수한 충격과 놀라움에 가까웠다. 나는 방에 책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유학을 떠나면 적어도 몇 년은 보지 못 할 것이다. 우리 집은 언니를 보러 자주 미국에 놀러갈 만큼 유복하지 않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언니의 방 쪽으로 돌렸다. 언니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민지의 방. 노크할 것.’

오늘따라 언니의 방문에 노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아마 우물쭈물하다 낯 간지러운 말 몇 마디를 던지고는 방에서 도망칠 것이다.

나는 언니의 방문을 괜히 노려보았다. 단 한 번도 우리 가족에서 누군가가 빠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선반에 진열된 언니의 트로피들과 상장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 언니가 가져가겠지. 언니의 책상과 침대는 어떻게 될까. 언니의 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을 먹으러 거실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댔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언니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생일에 같이 만들어 선물한 머그컵, 각자 좋아하는 채널로 돌리려 다투던 TV, 벽 곳곳에 붙여져 있는 그림들까지.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는 아직 방 안에 있다. 무엇을 하는 건지 쿠당탕 하고 뭔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일을 상상해 보았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녀 오 겠습니다 한 마디만 남기고 학교로 가는 내일을. 평소처럼 언니가 있든 없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일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언니는 모레 아침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출발한다. 내가 언니를 볼 수 있는 건 내일이 마지막

이다. 나는 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에 갔다. 언니의 칫솔이 없었다. 언니가 떠난다는 게 조금 실감이 났다.

다음날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가자, 먼저 세수를 하고 있던 언니가 있었다. 늘 보던 모습이지만 오늘 따라 묘하게 어색했다. 나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어….안녕? 그…유학 잘 가.”

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언니는 이 한 마디만 남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학교가 끝났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공원으로 옮겼다. 낙엽이 내 발밑에서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밟혔다. 강가 벤치에 도착하자 사람이 조금 있었다. 나는 벤치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 보았다. 저 맑고 푸른 하늘 위로 22시간 뒤 비행기가 날아갈 것이다. 낙엽이 또 한 잎 떨어지며 내 입 안으로 들어갔다. 퉤퉤, 나는 나뭇잎을 바닥에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보자 어쩐지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와 말을 안 하게 된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인 것 같았다. 나는 내신, 언니는 수능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우리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가끔 엄마는 우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언니와 내가 아직 사이가 좋았던, 옛날 앨범을 보여주신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때의 나는 언니가 멀리 떠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적어도 지금 같이 멍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푸르렀던 하늘이 약간 붉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식탁엔 저녁이 차려져 있었고 언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언니의 앞자리에 앉아 갈비를 한 조각 베어 물었다. 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요즘 공부는 어때?”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언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식탁은 우물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언니가 먼저 식사를 끝내고 나한테 왔다. “자, 이거.”

허름한 나무 상자였다. 언니는 그 상자만 주고 다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도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내 방으로 와 나무 상자를 열어보았다. 여러 장의 그림들과 사진들, 카메라와 장난감도 있었다. 나는 여러 장의 그림들 중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비행기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다른 건 다 완성되어 있었지만 하늘 부분만 채색이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이 그림을 책가방 속에 넣었다. 내일 학교에서 자세히 볼 생각이었다.

언니의 방문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언니는 오늘 유학을 간다.

아침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언니의 방문 앞에 커다란 케이지가 있는 것 빼고는. 언니는 오늘 한국을 떠나지만 나는 평소대로 학교를 가야 한다. 나는 평소처럼 책가방을 챙겼다. 나는 집을 나오기 전, 언니의 방을 힐끗 보았다.

언니의 방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 대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언니와 헤어졌다. 나는 다시 대문을 열고 언니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용기가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의 푸른 하늘 위엔 긴 구름이 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언니의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니의 그림을 꺼내 비행기가 그려진 부분을 오렸다. 하늘 위의 구름에 비행기 그림을 대자, 꼭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거센 바람이 불어 그림이 날아갔다. 나는 그림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에 만났을 때는 인사를 할 용기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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