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달리는 기차
월촌중학교 1학년 성우진
‘…그러므로 저희 마을에 기찻길을 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 머리를 감싸고 몇날 며칠이나 고민해서 쓴 편지였다. 하지만 이 편지가 시청까지 갈지는 모른다. 어느 쓰레기장의 불쏘시개로나 던져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 붙어있는 우표는 이미 몇 명이나 돌아가며 써 너덜너덜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반들반들하고 빳빳한 새 우표를 쓰고 싶다. 하지만 우표 값은 꽤나 비싸다. 연필과 편지지를 사는 데만 하루치 식비를 썼다. 더 이상 쓸모없는 소비를 하면 엄마의 고철 프라이팬에 내 머리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내 머리의 안위보다 중요시한 그 편지의 내용은 무엇일까. 바로 기차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난 딱 한번 대도시로 공부하러 가는 형을 배웅 나가느라 도시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어린 내가 놀라기엔 충분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기차였다. 커다란 기차가 기찻길을 따라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나를 매료시켰다.
안타깝게도, 이 후진 골목길에는 기찻길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청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좁은 골목에 기차가 어떻게 들어오느냐고 말이다. 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편지를 쓰고 있다.
폐지 수거함에서 책을 주워서 읽고 그 책의 그럴듯한 문장들을 베껴 썼다. 기차가 들어왔을 때 교통의 편리함, 시청의 이익 등 별의별 이유를 다 댔지만 아직 답장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너덜너덜한 우표가 떨어져 우체국에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을 수도 있고 동네 꼬맹이가 편지를 훔쳐 폐지로 팔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편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아마도 엄마의 프라이팬에 내 머리가 날아가거나 편지지를 살 돈이 다 떨어지지 않는 한 계속 보낼 것 같다.
편지를 보내고 다음날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큰 거리에서 달걀을 사오라는 귀찮은 심부름을 시켰다. 엄마는 무조건 김씨네에서 사야 한다, 소매치기 조심해라 등 온갖 잔소리를 했다.
그래도 아주 시간낭비는 아니다. 우체국에 잠시 들러서 몰래 편지들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달걀은 대충 사서 우체국으로 뛰어갔다. 달걀들이 달그락거리며 부딪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우체국 입구 안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숨을 고르고 살그머니 우체국 뒤편으로 숨어들어 갔다. 새로 온 편지들이 가득 쌓여있는 박스들을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내 앞으로 되어 잇는 편지는 단 한 통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상식적으로 편지가 간 바로 다음날에 편지가 도착할리 없는 것을 떠올렸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니 손이 무겁다. 꼬깃꼬깃한 잔돈과 부딪혀 금이 간 달걀을 엄마에게 내밀자 엄마의 표정이 금세 찌푸려졌다. 오늘 운은 더럽게 없는 것 같다.
편지를 보낸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 그동안 답장은커녕 우리 골목길에 우체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슬슬 새 편지를 써야 할 것 같다. 슬쩍 아빠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데 여동생의 눈총이 따갑다. 여동생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이 동네에서 제일 잘 그리는 아이일 것이다. 그런 여동생도 종잇값을 아끼기 위해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는데, 오빠란 놈은 아빠 돈으로 편지지를 뭉텅이로 사니 고까울 것이다.
여동생이 엄마를 부르려던 순간, 나는 돈을 다시 재빠르게 아빠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머리통은 지킨 것 같다.
잡심부름이라도 해 돈을 벌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쓰레기장에 큰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쓰레기장에 들이붓는 소리이다.
나는 쓰레기장으로 냅다 달렸다. 쓰레기에는 의외로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다만, 우리 동네의 거의 모든 남자애들은 그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머뭇거리다간 빼앗긴다.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듯하다. 내 쓰레기 우선순위는 비싼 것, 책, 문구류, 장난감 순이다. 빠르게 훑어보니 딱히 비싼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두 번째 우선순위를 찾으려 둘러보던 중, 무언가 눈에 익은 것이 그려진 책이 눈에 띄었다.
“‘기차를 타고’..!”
뜻밖의 큰 수확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이렇게 온전히 기차에 대한 책은 없었다. 나는 다른 쓰레기를 찾는 것도 잊은 채, 책 한 권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은 대충 훝어보니 연애 소설 같았다. 왜 제목이 기차를 타고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우선 책을 펼쳤다.
책은 연애 소설이 맞았고 내용은 두 연인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도피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은 뭐 당연히 그런 책이니까 쓰레기가 됬겠지만 딱히 재밌거나 몰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읽는 동안 엄마의 밥 먹으라는 말도 못 듣게 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한 만큼 몰입감이 뛰어났다. 처음으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작가의 이름은 민지웅. 우리 동네 흔한 남자애 이름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난 왠지 이런 책을 쓴 작가는 륄렌드라프 릴로코스키 같은 복잡한 이름일 줄 알았다. 어쩐지 이 작가가 대단해 보인다.
다음날 난 다시 연필을 들었다. 물론 기찻길을 놓기 위한 편지를 쓰기 위해서이지만 이번에는 방법이 살짝 달랐다. 바로 근사한 소설을 시청에 보내 유명한 작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우리 골목에 기찻길을 놓는 것이다. 시청에 언제까지고 하소연을 하는 것보단 이쪽이 좀 더 현실성 있어 보였다.
나는 연필을 잘근잘근 씹으며 무슨 소설을 쓸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난 추리 소설을 써보기로 결정했다. 주인공은 기차에 몰래 탄 소년으로 하고, 사건의 내용은 살인 사건. 설정을 정하니 문장들이 술술 나왔다.
나는 밤새 연필을 바쁘게 움직였다.
동쪽 하늘에서 아침 햇빛이 스며나올 때쯤, 나는 소설을 완성해 우체국으로 가지고 갔다.
우체국을 향해 걸어가며 내가 쓴 글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나쁘지 않은 듯하다.
처음으로 써본 소설 치고는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우체국 앞에 도착해서야 난 우표를 안 가져왔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어떤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한 아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아저씨가 자전거에 발을 올리고 출발하려던 순간,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그 편지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응? 저 앞 골목길~”
아저씨는 우리 집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곤 금세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갔다.
나는 잠시 멍을 때리다 이 저 안에 내게 온 편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전거를 쫓아 달리며 아저씨에게 잠깐만 멈춰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가 약간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나에게 뭐냐고 물어봤다.
“혹시 그 편지 중에 동성로 3번지 골목길 앞으로 되어있는 거, 있나요?”
아저씨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대충 편지를 훑어본 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실망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엄마에게 다가갔다. “네 앞으로 편지가 와 있더라.”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니 내가 나가 있던 사이 다른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놓고 간 것
같았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펼쳐보았다.
“…본 시청은 귀하의 끈기와 글재주가 시청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빠른 시일 내로 시청에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멍하니 마지막 문단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엄마와 형과 동생이 내 주위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형은 가장 빨리 편지의 내용을 이해한 듯싶었다.
“그럼 니가 그 뭐시냐, 시청으로 간다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낡은 배낭에 내 물건들을 던져 넣으며 여비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음,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중 편지 안의 빳빳한 지폐를 발견했다. 센스 있는 시청에 감사하며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그동안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듯 했다.
“꼭 가야 하는 거니?” 엄마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내가 옛날에 산 기차 배지를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우리 집의 낡은 대문이 열렸고 나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 기차역으로 가 기차를 타고 시청으로 갈 생각이다.
기차역에 도착해 표를 사 기차에 탔다. 나는 창밖의 우리 집이 있는 골목을 바라보았다.
뿌우우, 하는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는 더,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뒤에서 더 큰 기적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위로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